호모 스피리투스

블로그 이미지
지표면의 의식상승이 그리스도 재림입니다
용천미리내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08)
개설의 변 (1)
단상(斷想) (24)
인용문 (58)
수행법 (15)
기도문 (6)
도서목록 (4)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Calendar

«   2008/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

  • Total17087
  • Today4
  • Yesterday5
= 고시 합격기 같은 걸 보고 참고하듯이 공부경험을 가져왔습니다. 출처는 의식혁명 스터디클럽인데 꽤 진실하다고 느꼈습니다. 약간 편집했습니다(옮긴이 주).

놓아버림에 대한 명상인데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걸꺼예요.

호킨스 박사님의 책에서 보면, 마음의 길과 관련된 명상법이고, 주변시야 수행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생각해야 하는데, 하필 그때 자동차가 나를 향해 돌진해서, 잠시 모든 걸 멈추고 피합니다.

피하고 난 다음 다시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교훈과 통찰을 되새기려고 하는데, 이번엔 오토바이가 달려와서 또 다시 모든 걸 멈추고 몸을 옆으로 피합니다. 그 뒤로 계속해서 차들이 내 앞으로 돌진해서, 영원히 모든 걸 멈춥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현재에 머물면서, 내면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행법입니다. 그런데 현재에 머문다는 말 자체가, 또다시 무언가에 매달린, 뭔가를 하는 것을 암시하죠?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현재에 집중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놓아버린다는 뜻은 이런 의미입니다.

자신이 이 수행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할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 바로 응답할 수 있고, 그와 놀 수 있을때 (단, 표면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내면적으로 뒤로 미뤄야할 게 없다는 뜻). 무언가를 하다가 가령, 물을 마시려다가 컵을 입바로 앞에서 멈추고 그대로 가만히 서서 30초 버티기, 책을 집으려다가 책 바로 앞에서 가만히 서서 30초 이상 버티기 등등,

삶의 순간순간 무작위로 멈추어봅니다. 멈추었을 때와 멈추지 안았을 때의 차이가 전혀 없게 되었을 때,최종적으로, 이것은 편해야 되고, 편하지 않다면, 내면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머문다는 것도, 편하지 않다면 그것을 놓아 버립니다. 내면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혹은 마음의 것들은 마음이 하겠지.. 나는 안해!! 라는 태도. 포기, 놓아버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끝없는 헌신입니다(매 순간순간, 내면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끝없는 내맡김이자 헌신입니다). 그런데 계속하다 보면, 점점 힘이 안들고, 나중에는 거의 아무런 힘도 들지 않습니다.그러고 나면, 어렸을 때의 편안함으로 돌아가게 됩니다(단 처음에는 무지 힘이 듭니다).

이 편안함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이런게 목적이라면, 굳이 이룰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이런 편안함을 이루고 나서야 내면에 기쁨이 드러났습니다. 기쁨은 처음에는 잠깐 드러나다가 사라지고, 잠들 때 없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있고 등등을 반복했습니다.

삶의 순간순간에 잠깐씩 드러나던 기쁨이, 며칠 몇 주째 자신과 함께 있게 되면, 이게 나다('이 기쁨 자체가 나다'라는 뜻)라는 동일시가 생깁니다(그러길 희망하는게 아니라, 그런 동일시가 저절로 일어남).

다른 수행법들도 목표로 하는게 바램 없음, 집착하지 않음, 텅빈 마음 등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목표라고 하기보다는, 위의 상태가 본질적인 것들이 드러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마음상태인 것 같습니다.

일단 저 상태를 이루고 나면,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게 아무런 힘이 들지 않을 때까지 계속 합니다(끝없는 헌신이 요구되지만, 결국엔 갈수록 힘이 안들어감). 그러고 나면, 수행자는 진리의 목격자가 되어, 진리가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다만, 계속해서 운동과 명상을 합니다. 책도 읽고요..

이것이 추구자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 더 이상 진리나 기쁨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려고 해봐도 할 필요 없다는 이해가 찾아옵니다.

저는 이런 마음의 길을 가다보니, 저자신에 대해 온 집중을 다 했을 뿐,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나 염려는 고려 자체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근데 기쁨이 제 안에서 있게 되고 보니, 다른 사람들을 이 상태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상황과 상관없이 매순간 저절로 기쁨이 일어나는... 비록 그 기쁨이 작을지라도).

봉사와 보살핌의 가슴의 길과 마음의 길이 만나게 되는 지점이 있다는 호박사님의 글이 떠오르더군요. 정리하면, 최대한으로 편안하게 될 수 있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군가 말을 걸면, 바로 응답하고 그와 대화하고 나서도 뒤로 미뤘던 마음의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 자체가, 노력이라서 힘이 들겠지만요^^

일단 전혀 힘이 들지 않게 되면, 진리의 추구자는 이제 진리의 목격자가 돼서, 기다리게 됩니다. 본질적인 것이 드러나는 것에 앞서서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진리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 아니냐인 것 같습니다.

아직 무언가 상상해야 할 게 있고, 생각하고, 미래 과거 등에 집착을 해야 할 것들이 쌓여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어느 순간이라도 모든 것을 중지하고, 진리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돼야 할 것입니다(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 내면으로 뭔가를 미룰 게 없어서, 바로 그와 온전히 대화할 수 있는 상태).

기쁨이 드러나면,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 보고, 저렇게 생각해 보고, 이렇게 해석해 보고, 저렇게 해석해보고 하지 마세요^^ 그 속에 머물지 않고, 그 밖에서 정신화하는 그런 유희를 마음은 추구합니다. 그런 걸 하지 말고 이미 드러나고 있는 기쁨에 머무세요.

마지막으로, 호킨스 박사님은 그런 모든 영적 이해, 영적 능력은 신의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구도자가 그것을 개인의 영예로 돌리면, 영적 에고가 자란다고 합니다(저는 이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 제가 노력해서 얻은, 저의 이해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매순간 일어나던 작은 기쁨이 지금은 없습니다. 정신을 잃을 만큼 폭음을 하든가, 문란한 성생활을 하든지, 긴 시간 광적인 분노에 사로잡힌다든가 등등 무언가 극단적인 일을 하고 나니, 그 다음날로 사라지네요.

한번 갔던 길이라서 그런지 다시 오는데 몇 년 걸리던 것이 며칠이면 되더군요. 하지만 기쁨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별 수 있나요.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기다립니다. 그게 언제 올 지 알 수 없으니, 그것은 몇 년이 될 수도 있고, 며칠이 될 수도 있겠죠......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상태를 받아 들이고, 텅빈 마음으로 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1
prev Prev : [1] ...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 [108] : Next next

Tag Cloud